*트베리 지역 아카데미 드라마 극장
트베리에서는 볼가강변을 배회하는 일은 기본이다. 아름다운 그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몇 번이나 강변을 배회하게 된다. 강변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금세 익숙해진다. 여행자는 보편적으로 첫 날에만 ‘어리버리’ 할 뿐이다. 숙소로 오가는 넓은 차도(Sovetskaya Street)에는 눈길을 잡아 끄는 트베리 극장(Tver Regional Academic Drama Theater)이 있다. 차도 옆이라서 트램 전선줄 등으로 어수선하고 건물도 산뜻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도로를 길게 채운, 거대한 건축물이라서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설명 없어도 알 정도로 큰 극장 벽에는 사진들이 많이 장식되어 있다. 이 극장은 건축가 오부코프(Obukhov)에 의해 1760~1770년에 건축되었다. 1930년대에는 1,250석 규모의 홀이 있었다. 그러다 전쟁 중에 심하게 파괴되어 새로 복원했다. 복원하면서 옛 모습과는 크게 달라졌다. 극장 내부는 화려하게 장식되었는데 특히 대리석 기둥이 돋보이는 3층의 멋진 강당이 있다. 트베리 지역의 오래된 극장으로 지역의 큰 행사를 개최하는 장소로 이용된다. 작품이나 공연 평가가 좋은 극장이다. 필자도 오룔의 소극장에서 공연을 본 이후로 여운이 남은 터라 기회가 되면 꼭 공연장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러시아 극장 대부분은 여름철이면 휴장기를 갖는다. 그토록 염원하던 공연은 트베리에서도 보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극장 건물 말고도 칼 마르크스 동상(Karl Marx Monument)이나 레닌 광장(Plosh'yad' Lenina(전 Fontannaya 광장)의 레닌 동상. 그 외 오래된 건축물, 교회 등이 트베리에서 본 것들이다.
*호스텔에서 만난 아제르바이잔 여성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좀 하자. 첫날 강변 구경을 하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 빗줄기는 더 거칠어진다. 저녁 먹으러 식당 찾는 것을 포기한다. 숙소는 취사가 가능하기에 아껴두었던 라면 두 봉지 중에서 한 봉지를 끓여 먹을 생각이다. 그때 같은 방을 이용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왔다는 한 여성이 친근하게 다가선다. 그녀는 매일 진한 화장을 하고 옷차림도 편한 복장이 아닌, 데님 롱 스커트를 입는 등 잔뜩 촌스러운 멋을 내고 있다. 젊지만 영어는 전혀 못한다. 그녀는 번역기를 통해 ‘마켓을 가고 싶으냐’면서 직접 안내를 한단다. 억수처럼 비가 오는 데도 말이다. 딱히 살 것은 없었지만 오이나 토마토, 우유를 구입하면 좋을 듯해서 그녀의 성의를 받아 들인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냉장고를 직접 열어 주면서 사온 물건들을 보관하라며 알려준다. 무슨 일 있으면 도와준다는 말도 한다. 그녀는 분명히 살갑게 다가오긴 했지만 본인의 사적인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안한다. 그녀가 왜 이곳에 머물고 있는 지가 궁금하다. 여행자는 아니고 웬지 직업을 찾으러 온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번역기를 통해서도 답변을 하지 않으니 굳이 남의 사생활을 알 필요 없다. 필자는 금방 떠날 여행자니까 말이다.
라면 한 봉지를 꺼내 끓여서 고추장에 생오이를 찍어 김치 대용으로 먹는다. 으레 맥주도 한잔 곁들인다. 늘 여독이 쌓여 피곤하니 맥주 한 캔은 그냥 일상이나 다름없다.
*요상한 부부?와 요상한 게스트들
필자가 머문 칼리닌 호스텔의 ‘칼리닌’은 트베리가 한때 칼리닌이라는 지명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안 일이다. 이 숙소는 가성비가 좋은 곳이다. 저렴한 가격이지만 양념, 차 등을 다 갖추고 있어서 직접 요리를 해 먹기에 아주 좋다. 그런데 이 숙소는 여느 호스텔과 달리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필자가 머무는 6인용 도미토리 룸에는 장기투숙자들이 두 명 있는 듯하다. 한 명은 앞서 말한 아제르바이잔 젊은 여성이다. 필자가 머무는 동안 그녀는 늘어지게 늦잠을 잔다. 출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또 한 명은 30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다. 그 여성의 침대 옆에는 출근할 때 입으려는 듯 옷 가지들이 옷걸이에 여러 벌 걸려 있다. 그녀는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와 ‘사장(?, 러시아 고용제도에 대해서 정확히는 모르겠다. 단 남녀노소 불문하고 일을 많이 하는데, 거의 여성들이 일을 많이 한다. 트베리의 숙소는 오너가 있는 집인 듯해서 트베리의 관광안내소 직원에게 물어보았는데 대부분 주인은 따로 있다고 전했다)’의 어깨에 몸을 누이고 함께 술을 마시고 TV를 본다. 서로 연인처럼 보인다.
라면을 끓여 먹은 날, 인도에서 온 여행자를 식탁에서 만났는데 그 둘을 ‘부부’라고 했다. 영어 액센트가 요상한 소 농장에서 일하는 인도인은 ‘어차피 우리는 영어 대화라서 러시안들을 못 알아듣는다’며 웃는다. 그러나 부부라고 하나 이해는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그 둘은 방을 따로 쓰고 있다. 주인 남자는 아침에 다른 방에서 나왔다. 아무리 부부라지만 각방을 쓸까? 이해되지 않는다.
이들은 매일 밤, 거실에 앉아 오징어 포를 씹어가면서 TV를 보면서 떠들어댄다. 아제르바이잔 젊은 여성과 얼핏 커플로 보이는 한 남자도 합류해 4명이다. 첫날 그들은 내게도 합석하라고 했지만 할 일이 많았기에 거절했더니 더 이상 권유는 하지 않았다. 주인 남자는 영어를 할 줄 안다고 했지만 단 한마디도 구사하지도, 듣지도 못했다. 어느 날, 한 커플을 만나 얘기를 하고 있었더니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 그의 귀에는 영어가 그냥 소음이었을 뿐이다.
*우크라니아에서 온 여성
6인용 도미토리 룸에는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온 30대 중반의 싱글 여성이 있었다. 첫 날은, 본인이 마치 대단한 여성인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 말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보편적으로 ‘인사’ 정도는 나눈다. 이틀째 되던 날에야 말을 걸었다. 그녀는 심리학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허리와 다리가 아프다고 하니 본인의 윗 옷을 올려 허리벨트를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어릴 때, 일을 많이 해서 허리가 망가졌다고 한다.
그녀는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눈 밑 주름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화장을 해야만 조금 나아 보인다면서 열심히 화장품으로 얼굴을 다듬었다. 그녀는 일하러 러시아에 왔고 숙박비를 아끼려고 저렴한 호스텔을 이용한 것. 나름 우크라이나에서는 커리어우먼으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오데사’를 아름답다고 극찬을 했다(러시아 여행 당시는 우크라이나 여행 계획은 아예 없었다가 그녀의 현혹적인 설명에 혹했는지 결국은 우크라이나 여행까지 하게 된다). 그녀는 한국인들이 ‘성형’을 많이 한다면서 지적한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 여성들은 성형중독에 걸렸다는 말을 자주 한다. 스웨덴 식당의 여종업원은 날 보자마자 가슴을 들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한국인을 만나니 한국여성들의 가슴성형 뉴스가 떠올랐나보다. 그럴 때마다 난 내 얼굴을 가르키면서 ‘오리지널’이라고 말한다. 그저 언론의 뉴스일 뿐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하지만 속으로는 챙피하다. 그 정도로 한국 여성들은 ‘미’에만 관심이 많을까? 그날 우크라이나 여성은 눈 주름을 감추려고 화장을 열심히 하고 모스크바로 일하러 떠났다.
*이혼남과 초혼의 결혼식
또 숙소 게스트 중에 만난 한 쌍의 커플이야기도 하자. 식탁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늦게 음식을 준비하러 들어왔는데, 남자가 필자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뭔가 말을 하고 싶어하는 표정이다. 말을 들어보니 남자는 이혼남, 여성은 초혼이다. 그런데 이 커플은 고민이 있었다. 결혼식을 해야 하는데 돈이 많이 필요하단다. 초혼인 여성은 성대한 결혼식을 원하지만 재혼인 남성은 돈이 없단다. 전 부인과의 사이에 아이가 있어서 위자료를 주었단다. 상황은 이해하나 둘이 좋아한다면 ‘결혼식’이 꼭 필요할까? 그들에게 ‘그냥 식당을 빌려서 친한 친구들만 불러서 결혼식을 하라’고 권했다. 재혼남은 제법 공감을 하는 듯 했고 나와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했다. 그때 TV를 시청하면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사장이 조용히 해달라 했기에 이 커플과의 대화는 더하지 못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러시아 결혼 제도가 그렇다해서 꼭 무리를 해서 예식을 해야 할까?
러시아의 결혼제도에 대해서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필자가 만난 사람들 중 이혼, 재혼, 삼혼은 비일비재했다. ‘툴라’의 숙소에서 만난 일하는 아주머니는 이혼을 했다. 그런데 내가 숙소에 머무는 동안 한 남자가 찾아왔다. 남편이라고 말했다. 그 둘은 모스크바에 간 사장이 없는 틈을 타서 숙소로 찾아와 함께 술을 마셨다. 그녀에게 ‘한국인들은 결혼하면 한 사람과 평생 산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내게 반문했다. ‘한국인들은 애인이 따로 있어?’라고 말이다. 난 뜨끔했다. 최소한 한국인 중년들은 이중생활을 아주 많이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도 외국식 결혼제도를 선호한다. 가정을 지킨답시고 따로 ‘바람’을 피고 다니는 것보다 애정 없으면 이혼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전혀 관계없는 러시아까지 쥐도새도 모르게 이런 나쁜 정보들이 새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부끄러운 것은 결국 필자의 몫이다. 난 한국인을 대표하는 여행객이니 말이다.
또 한 명의 남자 게스트이야기도 해야겠다. 모스크바에서 왔다는 그는 영어도 제법 잘하고 똑똑했다. 언어 소통이 거의 불능한 러시아 여행이 슬슬 괴로워지고 있는 상황. 트베리에서는 다른 나라로 떠나는 방법을 찾고 있을 때, 언어 소통이 되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를 붙잡고 여행 정보를 캐내야 한다. 그에게 ‘토르조크’에서 ‘비시니 볼로초크’를 거쳐 ‘노브고라드’로 가는 방법을 물었다. 그는 비시니 볼로초크에서 노브고라드까지 가는 버스 편이 하루에 딱 한번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 정보는 정말로 유용해서 러시아를 탈출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길’은 열린다. 자꾸 묻고 또 물어야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 숙소는 다음에 트베리를 갈 기회가 있다면 또 머물고 싶다. 가격이 너무 싸니까 말이다.
*훌륭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Moskva’
트베리의 이틀째,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연 이틀 날씨가 좋지 않다. 러시아라도 여름에는 무덥다. 그런데 트베리에서는 연 이틀 비가 오니 의욕을 잃는다. 침대 위에 누워서 인터넷으로 맛집을 검색한다. 어쩌면 비가 오지 않았다면 일부러 식당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트립어드바이저’ 사이트를 통해 1위라는 모스크바(Moskva)라는 이탈리아 식당을 찾아낸다. 마침 숙소에서도 멀지 않다. 여행하면서 맨날 현지 음식만 먹을 필요는 없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스태프가 영어를 한다. 영어 메뉴도 있다. 메뉴판을 열어보니 ‘레스토랑에 대한 리뷰’를 쓰면 커피가 공짜란다. 러시아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파스타가 맛있다 하길래 맛 실패를 줄이기 위해 흔한 토마토 소스 파스타를 주문한다. 러시아에서 가장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올리비에(Olivier, 스톨리치니) 샐러드도 시킨다. 올리비에 샐러드는 ‘러시아 국민샐러드’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원래 모스크바의 호텔 레스토랑인 ‘에르미타시’의 주방장인 프랑스인 루시안 올리비에가 만들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멋진 플래팅을 한 샐러드가 먼저 나온다. 샐러드를 유심히 살펴보니 소고기를 아주 잘게 썰어 여러 가지를 섞어 만든 샐러드다. 맛있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두 번째 음식이 차려지는데 주문한 파스타가 아닌 피자다. 메뉴가 틀렸다고 굳이 따지지 않고 그냥 먹기로 한다. 얇은 도우를 가진 피자는 보통의 맛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타바스코 소스를 부탁한다. 러시아에서는 그 흔한 타바스코 소스 찾기가 어렵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대답은 ‘no’다. 그런데 어디서 찾았는지 나중에 갖다 준다. 모든 게 완벽한 식당이다. 그런데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지배인인 다가와서 티라미슈 케이크를 준단다. 이미 서비스로 준 커피를 마셨는데 달달한 케이크도 공짜란다. 좋은 음식과 좋은 서비스, 특히 훌륭한 마인드를 가진 식당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비 덕분에 오히려 훌륭한 식당을 찾게 되었으니 이럴 상황을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아름다운 세인트 캐서린 수도원
레스토랑을 벗어나 조금 걸으니 볼가강변과 만난다. 흐릿한 날씨, 강 건너로 아름다운 가옥들과 교회가 들어선 모습이 아름답다. 그곳에 옥빛을 띈 성 캐서린 수도원이 있다. 강변과 함께 어울려 참 아름답다. 이 수도원은 볼가 강과 트리야차 강변이 합류하는 지점의 강 언덕에 있다. 캐서린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트베르 궁전을 건축했던 예카테리나 파블로프나(일명 캐서린)와 연관이 있다. 1720년에 설립되었지만 1763년의 트베리 화재로 폐허가 되었다. 그때 캐서린과 마을 사람들의 기부로 재건축되었다. 또 세계2차 대전 때도 파괴되었다. 1989년에 재건되었고 1996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복원되었다.
성 캐서린 수녀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강변터미널(Rechnoy vokzal, River Station)이 있다. 원래 오트로츠(Otroch) 수도원 자리다. 오트로츠 수도원은 1265년, 트베리의 첫 왕자인 야로슬라비치(Yaroslavich, 1230~1271)가 설립한 유서 깊은 곳. 그러나 1938년, 모스크바~볼가강의 항로를 개통하면서 수도원을 파괴해 버리고 역을 만든 것이다. 건축가 두명(E.I. Gavrilova, P. P. Raisky)과 강제 수용소의 죄수들이 동원돼 만들었다. 소비에트 팔라디아주의 전형적인 스타일. 하지만 멀리서 보면 독특한 모양새가 인상적이지만 가까이에서는 거의 붕괴상태다. 강변 터미널 옆에는 가정성당(Cathedral of the Assumption)이 있다. 이 가정 성당은 오트로츠 수도원의 건축물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 13세기 초 타타르 족에게 불태워진 후 수십 년 동안 폐허로 있다가 18세기 초, 모스크바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된 건축물. 소비에트 시대에 수도원이 파괴되고 그 자리에 강변터미널이 세워졌을 때도 가정 교회는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 80년대에는 트베리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 1994년에 성전이 복원되었다. 오늘날 트베리의 랜드 마크 중 하나다.
*살티코프-시체드린의 집
또 강변에서 가볼 곳이 러시아의 유명 소설가인 미하일 예프그라포비치 살티코프-시체드린(Mikhail Yevgrafovich Saltykov-Shchedrin, 1826~1889)의 집이다. 시체드린은 필명이며, 본명은 살티코프다. 살티코프는 1860년~1862년에 트베리의 부총재를 지냈다. 그는 귀족 출신으로, 관리생활을 하면서 문학에 종사했고, 추악한 관료주의와 저속한 시민 근성을 그 날카로운 풍자의 힘을 빌어 폭로하는 등 급진주의적인 성향의 작가였다. 그의 작품 속에는 종종 당시 트베리의 현실들이 묘사되었다. 트베리에는 작가의 탄생 150주년에 만든 동상이 있다. 트베리에서는 러시아 작가로서는 첫 번째 기념비다. 또 그가 살던 집은 박물관이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트베리에서 볼만한 곳. 하지만 전부를 찾으려 애쓸 필요는 없다. 참조만 하면 된다.(계속)
*Data
*트베리 지역 아카데미 드라마 극장:Sovetskaya St., 16, Tver/http://www.tatd.ru/
*성 캐서린 성당:Kropotkina, 19/2, Tver/웹사이트:https://ift.tt/2NuBeaw 482 252-00-72
*가정성당:Afanasiya Nikitina Emb., 3
*살티코프-시체드린의 집(Rybatskaya, 11, https://ift.tt/2CFihzK (4822) 343496)
*Moskva 레스토랑 주소:Trekhsvyatskaya St.49/https://ift.tt/2Z0bd88 996 347-81-77
*칼리닌 호스텔:주소:Volnogo Novgoroda St.19
June 24, 2020 at 08:31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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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베리의 호스텔과 이탈리아 레스토랑 이야기 - 여성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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